캔터베리 대주교 당선자 사라 멀레이의 메시지: 복음의 진리와 공동체적 일치를 향하여
2025년 10월 17일, 영국 런던 주교인 사라 멀레이 주교가 제106대 캔터베리 대주교 당선자(Archbishop of Canterbury-designate)로서 첫 공식 서신을 발표했습니다.
이 서신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멀레이 주교는 새로 맡게 될 전 세계 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영적 지도자로서,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여러 과제들—특히 교리적 다양성, 교회 구조 개혁, 그리고 안전 보호(safeguarding) 문제—에 대한 신중하고 책임 있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멀레이 주교는 최근 영국성공회가 결정한 동성 간 관계에 대한 축복기도 허용 문제와 관련하여,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평생의 결합이라는 교회의 교리를 분명히 재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서로 다른 신학적 확신을 지닌 이들과도 존중과 겸손 속에서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일치의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가르침을 유지하면서도 대화와 기도의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매우 온건하고 사목적인 입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그는 현재 논의 중인 ‘나이로비–카이로 제안서(Nairobi–Cairo Proposals)’—세계성공회의 구조와 일치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문건—를 언급하며, 앞으로의 변화가 신학적 획일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고백과 지역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치의 구조로 나아가야 함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세계성공회가 직면한 조직적 재구성 논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보여줍니다.
셋째, 그는 영국성공회가 과거에 겪었던 ‘안전 보호 실패(safeguarding failures)’의 상처를 솔직히 인정하며, 피해자 경청과 신뢰 회복, 안전한 교회 문화 조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는 전임 대주교 재임 시기에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 대응 의지를 의미합니다.
이 서신은 멀레이 주교의 개인적 신앙 여정—16세 때의 회심에서 간호사, 사제, 주교로 이어진 부르심의 여정—을 배경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섬김의 영성’과 ‘공동체적 일치의 비전’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메시지는 오늘의 성공회가 나아갈 길을 ‘논쟁이 아닌 기도와 동행’으로 제시합니다.
대한성공회는 이 새로운 대주교의 리더십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도 하느님의 진리를 함께 증언하도록 부름받았음을 기억합니다.
캔터베리 대주교 당선자 사라 멀레이 주교의 메시지
2025년 10월 17일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 여러분께,
먼저 저의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 소식에 따뜻한 축하와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는 이때, 여러분의 위로와 지지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 부르심 앞에서 저는 평안한 마음으로 응답합니다. 제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라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남편 에이먼(Eamonn)과 두 성인 자녀를 비롯한 가족의 지지에 감사드리며, 이제 전 세계의 하느님 백성을 함께 섬길 여러분의 동역 또한 청합니다.
우리의 공동 사역은 매우 다양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과 박해, 극심한 빈곤의 한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사역에는 고유한 기쁨과 도전이 있음을 압니다. 저는 매일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의 신앙 여정은 16세 때 시작되었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개인적으로 결단하던 순간 이후, 이 관계는 제 삶의 닻이 되어 어떤 폭풍 속에서도 복음의 진리 위에 굳건히 서 있도록 지탱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부르심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그분이 인도하시는 어디로든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간호사로서, 인생의 가장 취약한 순간에 놓인 사람들을 돌보며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려 애썼습니다. 그 후 사제의 길을 걷게 되었고, 지금 런던에서 캔터베리로 나아가며 같은 소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새로운 사역은 결코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성공회의 동료 주교들, 사제들, 그리고 교우들과 함께 감당해야 할 공동의 부르심입니다.
저는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 가라.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여정을 걸어가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영국 성공회 내에서도 신학적으로 가장 다양한 교구 중 하나인 런던교구에서, 저는 제 직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들과도 존중 속에서 협력하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이 태도는 캔터베리 대주교로서의 사역에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 임명 발표로 인해, 영국성공회가 동성 간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허용하기로 한 결정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과 믿음의 기도(Prayers of Love and Faith)”의 도입을 환영하면서도,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평생의 결합이라는 교회의 교리를 유지하기로 한 영국성공회의 결정을 함께 지지합니다. 2023년 2월 총회(General Synod)에서 채택된 이 결정이 지금까지도 교회의 공식 입장입니다. 지난주 주교회의(House of Bishops)는 향후 이 문제와 관련된 추가 결정들은 별도의 총회 및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함을 원칙적으로 합의하였습니다.
이 사안이 성공회 전통 안에서 깊은 신학적 확신과 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겸손히 경청하며, 가능한 한 멀리 함께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함께 분별하고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여정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저는 최근 ‘교회 일치‧신앙‧질서 상설위원회(Inter-Anglican Standing Commission on Unity, Faith and Order)’가 발표한 「나이로비–카이로 제안서(The Nairobi–Cairo Proposals)」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성공회가 구조적·신학적 일치를 강요하기보다, ‘공동체의 도구들(Instruments of Communion)’ 안에서 고백적·지리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저는 내년 벨파스트에서 열릴 성공회 자문위원회(ACC) 회의를 앞두고, 여러분도 함께 이 문서를 숙고해 주시기를 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며,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느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로마서 12:2)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도 인내의 기도와 우정으로 함께 걸으며, 하느님의 뜻을 분별합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모잠비크, 바베이도스, 브라질 등 다양한 지역의 성공회 가족들과 예배와 선교, 성사와 말씀,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옹호의 삶을 나누며 큰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가능한 한 일치를 이루되, 양심적 차이를 존중할 공간 또한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영국성공회는 과거의 ‘안전 보호 실패(safeguarding failures)’로 인해 깊은 상처와 불신의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저는 대주교로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취약한 이들을 돌보며, 교회 안에 안전과 신뢰의 문화를 세워가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반석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모든 이를 위한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동료애와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내년 제 착좌식과 ACC-19 회의에서 여러분의 대표들을 만나 함께 일하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전 세계 성공회가 매일 서로를 위해 기도하도록 이끄는 ‘성공회 기도 주기표(Anglican Cycle of Prayer)’를 감사히 떠올립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회는 매일 저의 기도 속에 있습니다. 저와 영국성공회의 사역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 멀레이 주교 (Rt Revd & Rt Hon Dame Sarah Mullally DBE)
런던 주교
캔터베리 대주교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