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섬김, 사랑으로 빚어낸 100년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설립 100주년 기념과 『100년의 걸음』에 부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
지난 2025년 9월 13일, 서울주교좌성당에서는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Society of the Holy Cross)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장엄하고 감격적인 감사성찬례가 봉헌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수도회의 역사를 기념하는 행사를 넘어, 한국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리내리고 시련 속에서도 꽃피어 다음 세기로 이어지는 한국 성공회 100년의 신앙 여정을 되돌아보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며 발간된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의 100년의 걸음』은 성가수도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성을 따라 기도와 일(Ora et Labora), 그리고 이웃 사랑의 삶을 어떻게 헌신적으로 살아왔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귀한 기록입니다.
200쪽이 넘는 풍부한 내용과 성가수도회의 역사를 반영하는 사진들로 가득한 이 책을 모두 요약하는 것은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를 알리고, 수도회의 깊은 신앙과 헌신의 역사를 간추려 소개하는 의미에서 이 글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책은 1892년 영국 성 베드로수녀회 수녀들이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오늘날 미얀마까지 이어지는 성가수도회의 복음적 순례를 세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기도와 섬김, 순명과 사랑으로 엮인 ‘하느님 나라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제1장. 성가수도회의 뿌리와 불굴의 순례: 1892년부터 1973년까지
1. 한국 선교의 여명과 성가수도회의 탄생 (1892-1925)
성가수도회의 역사는 1892년, 영국 성 베드로수녀회(Community of St. Peter) 수녀 다섯 분이 코프 주교(고요한 주교)의 초청으로 조선 땅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조선의 엄격한 남녀유별 문화 속에서, 여성 선교사의 필요성을 절감한 요청에 따라 노라, 로살리, 마가레타, 알마, 로이스 수녀는 간호와 교육 훈련을 받고 이 미지의 땅에 왔습니다.
이들은 서울 정동에 첫 수녀원을 설립하고 의료 선교(성 베드로병원, 성 마태오병원), 보육 활동(성 피득보육원), 그리고 적극적인 전도 활동을 펼치며 한국 성공회 선교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특히 성 피득보육원은 80년간 운영되며 약 1천 명의 고아를 돌보는 등,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전인적 돌봄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헌신의 열매로 1925년 9월 14일, 성 십자가 축일에 한국인 수도 공동체인 성가수도회(Society of the Holy Cross)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초대 관리자 조마가 주교는 외국인 선교사의 한계를 넘어 한국인 스스로 복음을 전파할 방인(邦人) 수도회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초대 한국인 지원자 이비비 수녀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가 영적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2. 일제강점기의 시련과 순교 정신 (1940-1950)
1940년대는 일제의 기독교 탄압과 제2차 세계대전의 격랑으로 인해 극도의 시련기였습니다. 영국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초대 신모였던 마리아 클라라 수녀(Sr. Mary Clare Whitty)는 홀로 남아 수도회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한국 교회에 완전히 헌신하기 위해 영국 성 베드로수녀회를 떠나 성가수도회의 일원이 되었고, 이비비 수녀에게 2대 신모직을 맡기며 수도회의 완전한 한국인 독립(방인 수도회)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마리아 클라라 수녀는 영국 영사관의 긴급 피신 권유를 거부하고 “나는 죽어도 너희와 함께 죽겠다”며 한국 수녀들과 함께 남았습니다. 그녀의 헌신과 지혜 덕분에 수녀들은 서울주교좌성당의 귀한 성물들을 땅에 묻어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 클라라 수녀는 결국 인민군에게 납치되어 북한 중강진으로 끌려갔고, 1950년 11월 6일 ‘죽음의 행진’ 중 순교하였습니다.
그녀의 순교는 한국 성공회 신앙의 깊이를 증언하는 숭고한 유산이 되었으며, 한국 수녀들은 폐허가 된 수녀원에서 성물을 발굴하고 공동체를 재건하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피워 올렸습니다.
3. 재건과 자립의 기틀 (1953-1973)
전쟁 이후, 이마리아 수녀(3대 신모)와 이비비 수녀(2대, 4대 신모)의 헌신적인 리더십 아래 수도회는 재건의 길을 걸었습니다. 특히 1960년대 초반은 새로운 지원자들이 입회하고, 구세실 주교가 기증한 8,000파운드의 유산으로 새로운 본원 건물을 신축하는 등 현대적 수도회 체계를 정립하는 시기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 성가수도회는 사회복지 활동과 선교 영역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으며, 1973년에는 종신서원 수녀들이 미사 중 보혈조력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교회 활동의 폭을 넓히는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제2장. 세계로 확장되는 사랑의 현장 (1973-2025)
1. 사회복지 선교의 전문화
1970년대 이후 성가수도회는 노인복지와 장애인복지 사업을 개척하며 사회복지 선교의 전문화를 이루었습니다.
- 성 안나의 집 (노인복지): 1969년 노인복지 사업 계획을 결의하고 1981년 강화군 최초의 노인복지시설인 ‘성 안나의 집’을 무료 양로원으로 개소했습니다. 이는 노인 소외 문제가 대두되던 시기에 선구적으로 응답한 실천이었으며, 2004년에는 노인전문요양시설로 전환하여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 성 보나의 집 (장애인복지): 1990년, 지적 장애인을 위한 중증 요양시설인 ‘성 보나의 집’을 청주에 완공하며 장애인복지라는 새로운 선교 영역을 열었습니다. 이는 소그룹 공동체 모델을 도입하는 등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전문 복지 실천이었습니다.
2. 미얀마 선교의 시작과 분원 설립
성가수도회는 2013년부터 오랜 기도와 준비 끝에 아시아 지역인 미얀마에 첫 해외 분원을 설립하는 선교적 순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미얀마 성소자 양성: 2013년 미얀마 자매 세 명이 한국에 입국하여 수도 생활을 시작했으며, 2021년에는 양곤주교좌성당에서 성가수도회 최초의 미얀마인 수도자들이 종신서원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미얀마 성공회 역사상 첫 수도자들이기도 했습니다.
- 반달 공부방 개원: 군부 쿠데타와 팬데믹 등 불안정한 현지 상황 속에서도 성가수도회는 ‘반달 공부방’을 개원하여 미얀마 빈곤 지역 아이들에게 교육과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교회가 받은 은혜를 세계로 흘려보내는 선교적 순환의 귀한 열매입니다.
3. 성가 재속회와 평신도의 동반
2005년, 성가수도회 설립 80주년을 기념하여 성가재속회(The Associates of the Society of Holy Cross)가 창립되었습니다. 이들은 세상 안에서 기도와 봉사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여성 교우들의 모임으로, 수도회의 영성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 영적 동반자: 재속회원들은 수도회의 영성을 내면화하고, 나눔과 섬김, 사랑을 서약하며 수도회와 함께 영적 여정을 걷는 동반자입니다.
- 성숙한 신앙 공동체: 수도자들은 영성 지도를 제공하고, 재속회원들은 기도와 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 상호 순환적인 관계를 통해, 수도자와 평신도가 함께 이루는 성숙한 신앙 공동체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기적인 모임과 피정, 봉사 활동을 통해 수도회의 정신을 일상 속에서 충실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 결론: 다음 100년을 향한 희망의 발걸음
성가수도회의 100년 역사는 고통과 희생의 십자가를 통해 부활과 영광의 파스카 신비로 나아가려는 헌신의 기록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한국적 정서와 결합하여 기도와 봉사의 삶으로 구체화된 것입니다.
초기 영국 선교 수녀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시련 속에서도 수도원을 굳건히 지켜낸 한국인 수녀들의 불굴의 신앙은 다음 100년을 향한 든든한 토대입니다. 성가수도회는 미얀마 선교와 국내 사회복지를 통해 이 사랑의 유산을 계속해서 세상으로 흘려보내며,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영적 등불이 될 것입니다.
이 『100년의 걸음』이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증언하고, 새로운 순례로 초대하는 은총의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