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성공회의 미래를 위한 ‘나이로비-카이로 제안’ 소개
문서 배경
2024년 대림절, 성공회 일치·신앙·직제 상임위원회(IASCUFO)는 ‘나이로비-카이로 제안: 세계성공회 기구들의 갱신(The Nairobi-Cairo Proposals: Renewing the Instruments of the Anglican Communion)’이라는 중요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문서는 2023년 2월 가나 아크라에서 열린 제18차 성공회 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 ACC-18)의 요청에 따라 작성되었으며, 성공회 내 차이점과 불일치를 다루기 위한 구조 및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제시합니다.
이 보고서는 2023년 9월 케냐 나이로비와 2023년 12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된 IASCUFO 회의를 통해 초안이 마련되었고, 2024년 4월 로마에서 열린 주교회의에 제출되어 논의되었습니다. 이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캔터베리 대주교, ACC 상임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 완성되었습니다.
주요 내용
1. 성공회의 현 상황과 도전
이 보고서는 성공회가 직면한 두 가지 핵심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 지속적인 불일치와 분열의 상황에서 성공회의 신앙과 질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완전한 상호 인정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다음 단계를 위해 어떻게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여전히 성공회 구조에 남아있다면, 모든 회원 교회의 평등, 상호성, 번영을 장려하기 위해 어떤 조정이 필요한가?
2. 주요 제안
이 보고서는 크게 두 가지 핵심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제안: 성공회 설명 개정
1930년 람베스 회의에서 채택된 성공회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개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성공회는 하나이요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 안에서, 다음과 같은 공통된 특성을 가진 정식으로 구성된 교구, 관구 또는 지역 교회들의 친교Communion입니다:
a. 그들은 각 교회에서 승인된 공동기도서에 일반적으로 명시된 대로 공번되고Catholic 사도적Apostolic 신앙과 질서를 지지하고 전파하려고 합니다.
b. 그들은 자치적이며, 각자의 영역 내에서 기독교 신앙, 생활, 예배의 지역적 표현을 증진합니다.
c. 그들은 공유된 유산, 상호 봉사, 회의에서의 공동 조언(주교들과 다른 이들의), 캔터베리 주교좌와의 역사적 연결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상호의존적으로 가능한 최고 수준의 친교를 증진하려고 합니다.
이 개정안은 성공회의 현대적 현실을 더 잘 반영하며, 캔터베리 주교좌 중심의 이해에서 벗어나 상호 평등한 교회들의 친교로서의 성공회를 재정의합니다.
두 번째 제안: 공의회 도구들의 리더십 확대
성공회 협의회(ACC)에 성공회 5개 지역에서 순환하여 선출하는 ‘세계성공회 의장직‘을 도입하고, 주교회의 상임위원회가 주교회의와 람베스 회의의 소집과 진행에 더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성공회의 다양성을 더 잘 대표하고, 캔터베리 대주교가 모든 성공회 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해야 한다는 기대를 완화함으로써 대주교의 개인적, 목회적 사역이 더 잘 발휘될 수 있게 합니다.
중앙 구조 강화의 필요성과 의미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 변화
전통적으로 성공회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상징적 리더십을 통해 구심력(연대의 깊이)과 원심력(다양성과 자율성)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왔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의장으로서의 역할을 최소화하며 각 지역 교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성공회의 느슨한 연합체를 이끌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성공회 내 깊은 신학적, 윤리적 불일치가 심화되면서 이 균형에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중앙 강화가 필요해진 상황
다음과 같은 여러 요인이 성공회 공의회 도구들의 강화 필요성을 촉발했습니다:
- 신학적 불일치의 심화: 동성 결혼과 성직자 임명에 관한 지속적인 논쟁은 단순히 ‘함께 다르게 살아가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성공회의 2023년 ‘사랑과 신앙의 기도’ 도입과 그에 따른 글로벌 사우스 성공회 교회들(GSFA)의 반응은 이러한 긴장의 심화를 보여줍니다.
- 전통적 중심의 약화: 영국 성공회가 더 이상 수적으로나 영향력 면에서 성공회의 중심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교회들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성공회의 무게중심이 이동했습니다.
- 식민지 시대 유산 극복: 캔터베리 중심의 구조는 불가피하게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장하는 글로벌 사우스 교회들에게 문화적, 역사적 불편함을 야기합니다.
- 의사결정의 한계: 기존의 느슨한 연합 구조에서는 교리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 형성과 결정이 어려웠습니다. 이는 혼란과 개별 교회 간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제도 강화를 통해 기대되는 결과
내이로비-카이로 제안이 제시하는 공의회 도구 강화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 다극화된 리더십: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집중되었던 상징적 리더십을 5개 지역 대표로 분산함으로써, 성공회의 글로벌한 정체성이 구조적으로 반영됩니다. 이는 탈식민지화 과정의 중요한 단계입니다.
- 명확한 의사결정 체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와 ACC의 강화된 역할은 성공회 내 논쟁 해결을 위한 더 명확한 메커니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의사결정의 진공 상태’를 방지하고 성공회 전체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 공동 식별의 강화: 더 정기적이고 구조화된 협의 과정을 통해, 성경과 전통에 대한 해석에서 발생하는 차이점들을 더 체계적으로 탐색하고 다룰 수 있습니다.
- 다양성 속의 일치: 지역적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공유된 신앙고백과 예배 전통 안에서 일치를 추구할 수 있는 구조적 토대가 마련됩니다. 이는 ‘가능한 최고 수준의 친교’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제공합니다.
- 글로벌 사우스 교회의 리더십 증대: 성공회 내 가장 급속히 성장하는 지역 교회들의 목소리와 역할이 강화됨으로써, 성공회의 미래 방향성에 이들의 신학적 관점과 문화적 가치가 더 깊이 반영될 수 있습니다.
성공회 전통의 ‘공동조언(Common Counsel)’의 의미와 중요성
공동조언의 정의
‘공동조언(Common Counsel)’은 성공회 교회론의 핵심 개념으로, 나이로비-카이로 제안에서 성공회 공동체의 결속 요소 중 하나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신앙, 질서, 사명에 관한 중요한 결정과 방향성을 함께 숙고하고 분별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어 ‘counsel’은 ‘조언’, ‘상담’, ‘협의’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common’은 ‘공동의’, ‘공유된’이라는 의미로, 이 두 단어의 결합은 성공회가 교회로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공동체적 지혜를 모으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성공회 전통에서의 공동조언
역사적 배경
성공회 전통에서 공동조언의 개념은 초기 교회 시대부터 이어진 교회 회의와 공의회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1930년 람제스 회의의 결의안 49항에서는 성공회를 “중앙의 입법 및 집행 권한에 의해서가 아니라, 회의(conference)에서의 공동조언을 통해 유지되는 상호 충성으로 묶여 있는” 교회들의 공동체로 정의했습니다.
이는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같은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아니라, 각 지역 교회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조언하는 구조를 갖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공동조언의 실행 수단
성공회에서 공동조언은 주로 다음과 같은 ‘공의회 도구들(Instruments of Communion)’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 람베스 회의(Lambeth Conference): 10년마다 개최되는 성공회 주교들의 회의로, 186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권고적 성격을 가지며, 공식적인 입법 권한은 없으나 성공회 전체의 방향성과 신학적 입장을 표명하는 중요한 장입니다.
- 주교회의(Primates’ Meeting): 성공회 각 관구의 대주교 또는 수석주교들이 모여 성공회의 일치와 사명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입니다. 1978년에 정식 설립되었습니다.
- 성공회 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 ACC): 1968년에 설립된 기구로, 주교, 성직자, 평신도 대표들이 참여하여 성공회 전체의 관심사를 논의합니다. 세 공의회 도구 중 유일하게 성직자와 평신도가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기구입니다.
- 캔터베리 대주교(Archbishop of Canterbury): 성공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다른 공의회 도구들의 소집과 주재를 담당해 왔습니다.
공동조언의 신학적 의미
삼위일체적 친교의 반영
공동조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다르지만 완전한 일치와 사랑 안에서 존재하시듯, 성공회 공동체도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조언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교(코이노니아, koinonia)를 교회 생활에서 구현하는 방식입니다.
몸의 신학과의 연결
성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됩니다(고린도전서 12장). 각 지체는 고유한 기능을 가지며, 서로 다르지만 함께 작동할 때 온전한 몸을 이룹니다. 공동조언은 이러한 몸의 신학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각 교회와 구성원의 고유한 목소리를 존중하면서도 함께 분별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
공동조언의 과정은 성령께서 교회 공동체를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신뢰에 기반합니다.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러한 신학적 이해의 성경적 모델을 제공합니다. 공의회는 “성령과 우리는… 생각하였다”(행 15:28)라고 선언함으로써, 공동체적 분별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대 성공회에서 공동조언의 도전과 변화
나이로비-카이로 제안의 관점
나이로비-카이로 제안은 기존의 공동조언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제시합니다:
- 확장된 참여: 기존의 “주교들의 공동조언”이란 표현을 “주교들과 다른 이들의 공동조언”으로 확장했습니다. 이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목소리를 더 강조하는 변화입니다.
- 구조적 분산: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집중되었던 공의회 도구들의 소집과 주재 기능을 5개 지역을 대표하는 리더십으로 분산시키는 제안을 통해, 공동조언의 과정이 더 포용적이고 대표성을 갖도록 합니다.
- 상호의존성 강조: “상호의존적으로(interdependently)” 친교를 증진한다는 표현을 추가함으로써, 공동조언이 단순한 논의를 넘어 깊은 관계적 책임을 내포함을 강조합니다.
공동조언의 미래와 중요성
나이로비-카이로 제안은 이러한 도전 속에서도 공동조언이 성공회의 정체성과 미래에 핵심적임을 재확인합니다. 제안된 변화들은 공동조언의 과정을 더 포용적이고, 대표성 있으며,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성공회가 직면한 분열의 위기 속에서, 공동조언은 단순한 의사결정 방식이 아니라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단일한 목소리를 통한 강제된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중시합니다.
공동조언을 통해 성공회는 “가능한 최고 수준의 친교”를 추구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향한 더 넓은 에큐메니칼 비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위해 “진리를 사랑으로 말하는”(엡 4:15) 성경적 소명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공동조언은 성공회의 고유한 교회론적 특징으로,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성공회의 노력을 반영합니다. 나이로비-카이로 제안은 이러한 공동조언의 가치를 재확인하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과 도전에 맞게 그 실천 방식을 갱신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에 주는 의미
대한성공회를 포함한 모든 성공회 교회들은 이러한 공동조언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사명을 위한 공동체적 분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성공회는 “한 몸, 한 성령, 한 희망,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 아버지”(엡 4:4-6)를 향한 교회의 본질적 소명을 더욱 충실히 구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성공회는 아시아 지역 성공회의 일원으로서 이러한 변화 과정에 중요한 참여자입니다. 이 제안들은 성공회 전체의 다양성을 더 잘 반영하고, 모든 회원 교회들이 리더십에 더 균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 성공회 교회들이 공의회 도구들의 리더십에 순환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제안은 한국 성공회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목소리가 성공회 전체의 방향성 설정에 더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동시에 아시아적 맥락에서의 신학적 성찰과 실천이 전체 성공회에 기여할 수 있는 통로를 확장합니다.
IASCUFO는 이 제안들이 성공회가 직면한 도전들에 대한 부분적인 대응이며, 신뢰를 회복하고 더 강하고 평등한 친교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성공회가 세계를 위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교의 여정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이러한 대화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식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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