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의장주교 부활절 메시지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루가 24:5)

겨우내 추위를 피해 교구 사무실 안에 들여다 놓은 크고 작은 10여개의 화분들을 보니, 죽은 것들도 있고 잘 견디어 낸 것들도 있습니다. 군자란은 아주 실한 꽃 봉우리를 한 아름씩 품고 있습니다. 이 또한 부활절의 전령들이 아닐런지요?

언제나 4월은 가슴 시린 때입니다. 제주 4.3 넘어, 4.19 혁명 넘어, 세월호의 아픔 넘어, 거대한 산불 피해의 고통 넘어, 그리고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분열과 상처를 넘어 부활대축일을 맞습니다. 겨울 없는 봄도 있을 수 있을 텐데, 아픔 없는 기쁨도 있을 텐데 하는 막연한 아쉬움도 가져 보지만, 결국 산고 없는 해산은 없음을 겸손히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대축일은 교회력의 근간입니다. 마치 도도한 강줄기를 이루는 수원지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 이 땅의 교회가 맞이하는 부활절의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모진 추위를 견디어낸 끝에 찾아온 봄 같습니다. 그래서 더 새롭고 소중합니다.

루가복음이 전하는 예수님 부활 기사는 올해 이 땅의 교회가 부활을 맞이하는 정서와 비슷합니다. 루가가 전하는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뿐 아니라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그 누구도 안식일 다음날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빈 무덤만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었기”(루가 24:5) 때문일 것입니다.

일명 광화문파, 여의도파의 소음이 세상에 교회를 나타내는 것 같은 모습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는 처절한 절망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뵐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자포자기를 한 채 엠마오로 돌아가던 길에서 글레오파와 그의 동료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교회가 변화와 성화를 추구하는 길에서 뵐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길 위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길 위에서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끝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이 소망을 놓치지 맙시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부활절이 살아 계신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오류를 반복하는 행사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을 산자 가운데서 찾는 교회여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절망을 딛고 희망을 움켜쥐는 사람들, 분열의 고통을 부여잡고 통합을 향해 더딘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가만히 숨죽이고 있지 않고 거리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대한성공회 의장주교 박동신 오네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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