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한성공회 환경주일

대한성공회 생명기후연대에서는 오는 성삼위일체 주일(6월 12일)을 환경주일로 정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 자료를 제공하였습니다.


● 환경주일 본기도 (‘성공회기도서’ 창조질서 보전 기도문)

창조주 하느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돌보라 명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어, 어리석은 욕심으로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 축복기도

이 세상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 창조질서의 신비를 알게 하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이 세상 피조물과 여러분에게 강복하소서.


사람의 발밑에 있는 만물들

– 성삼위일체주일 / 환경주일

  • 잠언 8:1-4, 22-31
  • 시편 8
  • 로마 5:1-5
  • 요한 16:12-15

시편 8편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만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의 노래입니다. 하늘과 별, 들에서 뛰노는 크고 작은 동물들,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 모든 만물은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니 만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은, 창조주에 대한 경탄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온 우주 만물에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이 모든 만물이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졌다고 노래합니다. 사람이 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발밑에 거느리다”는 표현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선 표현입니다. 왕의 권세에 백성이 굴복하는 전제주의 시대의 계층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 낯선 표현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 만물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은 아닐까요? 마치 불의한 통치자가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고, 착취하고, 억압하고, 정복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 만물을 대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나요?

“발밑에 거느리다”는 표현이 말하는 참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신자들은 하느님의 통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보면, 우리 인간이 자연 만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하느님의 통치는 계층적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높고 낮음이 없이 온전히 참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각기 따로 움직이는 분이 아니라,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권한을 독차지하는 분이 아니고, 책임을 서로 나누어 갖는 분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자신을 높이지 않고, 서로를 영광스럽게 높이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가르쳐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래야 합니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지어야하고, 서로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느님의 통치는 성육신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서 발 아래를 내려다보는 통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 굽히고 낮추셔서 발 아래 인간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오십니다. 완고한 율법교사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옹호자이자 치유자이며 해방자로 오십니다. 

셋째로 하느님의 통치는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을 통해 세상을 구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과 입과 실천을 통해 헌신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기쁘게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통치는 감동을 주어 이끌어갑니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인간에게 하늘의 지혜를 가르쳐주시고, 소명을 주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드론을 원격조종 하듯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선한 일인지, 무엇이 마땅한 일인지,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통찰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 세상 만물을 발밑에 거느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세상 만물에 대한 책임과 의무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에 새겨진 하느님의 이름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그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이 깨어지지 않도록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전하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이 인류의 발아래에서 짓눌려 사라지고 있으니 어찌 우리 책임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기후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다양한 기후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지구 평균기온이 현재보다 2도 이상 상승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대응하자.’는데 만장일치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기후변화의 주요 요인은 온실가스 배출에 있습니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서 자연 만물을 무분별하게 소비하며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해왔던 것입니다.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부도 탄소중립을 선포하였고, 기독교계에서도 ‘2050 한국교회 탄소중립 선포’하고 한국교회 탄소중립 실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만물을 사람에게 다스리게 위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세상이 깨어지지 않도록 움직여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방식으로 인류가 서로 평등하게 협력하고 지지하며 기후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성육신의 마음으로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생태적인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자연 만물의 조화와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불편함을 감수하고, 환경보전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도웁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탄소중립 약속을 지키도록 촉구하고 감시합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이웃과 더불어 생태적 삶의 가치에 대한 통찰력을 공유합시다. 

이렇게 할 때, 진정으로 만물을 발밑에 거느리고 있다고 말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만물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가 비로소 노래다워질 것입니다. 


태양의 찬가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지극히 높고 강하며 선하신 주님, 모든 찬미와 영광과 기림과 축복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오로지 당신의 것인 까닭은 지극히 높으신 당신만이 참으로 합당하기 때문이옵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지존한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으니,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서 찬미를 받으소서. 형제인 태양에게서 찬미를 받으소서. 태양을 낮이 되게 하시어, 저희에게 빛을 주시었으니, 태양은 아름답고 찬란한 광채로 당신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니,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자매인 달과 별들에게서 찬미를 받으소서. 맑고 빛나고 사랑스럽도록 그들을 지으신 분은 당신입니다.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형제인 바람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공기와 구름과 맑고 고요한 날씨와 온갖 기후를 통해 찬미 받으소서.

손수 지으신 그들을 통해 당신은 피조물들을 살피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자매인 물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물은 쓸모 있고 겸손하며 맑고 소중하나이다.

주님, 당신은 찬미 받으소서. 형제인 불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불은 아름답고 장난스러우며 활달하고 강하나이다.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자매이며 어머니인 대지로부터 찬미를 받으소서. 우리를 지켜주고, 지탱해주고, 꽃들과 풀들과 모든 과일을 낳아 줍니다.

주님, 당신은 찬미 받으소서. 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남을 용서하는 사람들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아픔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을 바라보며 고요히 참아내는 이들은 복되나이다. 그들은 월계관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찬미 받으소서. 자매인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찬미를 받으소서. 아무도 죽음을 피할 자 없나이다. 큰죄를 짓고 죽음을 맞는 이들은 불행하나,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따르며 죽음을 맞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두 번째 죽음이 그들을 해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주님께 찬미와 축복과 감사를 드리오며, 지극한 겸손으로 당신을 섬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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